2013. 6. 22. 16:58ㆍ전라북도/익산시
익산터미널에서 41번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가다보면 원광대학교를 지나 미륵사지에도착할수 있다.
원광대학교까지는 시내길로 가다가 그 이후부터는 지방도로가 나오는데 인내심을 가지고 가다 보면 미륵사지정류장에 내리게 된다.
미륵사지에서 내리면 길 건너편으로 미륵사지 입구가 보이고 저 멀리 높은 탑과 사적 제 150호 미륵사지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입구에 있는 안내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백제(B.C. 18~A.D660)에서 가장 큰 가람이엇던 미륵사의 창건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잇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30대 무왕(A.D. 600~641년)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에 있는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못(池)에서 미륵삼존이 출연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또 지명법사의 도움으로 산을 허물을 못을 메우고 전(금당). 탑. 낭무(회랑)를 세 곳에 마련한 가람을 조영하였는데 신라 진평왕이 백공(百工)을 보내어 도와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발굴조사에 의해서 미륵사가 3원 1가람이며 산, 흙으로 메운 못에 자리하고 있는 점 등이 밝혀져 삼국유사의 기록이 실증적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믿는다면 미륵사에는 창건 당시 건축. 공예 등 백제의 문화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었을 뿐 아니라, 신라 등 삼국의 기술이 결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 창건은 이 곳 금마에 가람을 조영하여 마한 세력을 아우르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나 황룡사로 대표되는 신라 화엄신앙에 대비되는 백제 미륵신앙에 바탕한 것이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넓은 벌판에 높은 석탑 하나와 그 옆쪽에 콘테이터박스 재질의 높은 건물 하나가 보인다.
탑 쪽으로 가다보면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돌들을 모아논 것을 볼 수 있다.
미륵사지도 백제 사찰의 기본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점과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다.
백제가람의 기본형태는 1탑 1금당 형식인데 미륵사지는 3탑 3금당을 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보면 1탑 1금당이 3개가 있는 형태라 확장형이라고 할 수 있어보인다.
입구에는 여타 사찰과 유사하게 2개의 연못이 보인다.
당간지주, 동, 서, 남쪽의 회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때 만들어진 연못이라고 한다.
동쪽연못의 서측 일부는 석축을 쌓았으나 대부분은 점토를 반원형으로 여러 층 판축(板築)하거나 자연지반에 점토를 덧씌운 방법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가다보면 당간지주가 2개가 보인다. 보통 내가 보던 사찰에서는 당간지주가 1개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2군데에 당간지주가 있다.
높이 약 4미터 정도의 두기의 당간지주가 약 90미터 거리를 두고 있고 이 당간지주도 통일신라시대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금더 위로 가면 여러 건물들과 목탑자리에 주춧돌을 확인할 수 있다.
1992년에 새로 만들었다는 동편 석탑을 보면 총 높이 27.8m로 익산 황등에서 캐낸 화강암으로 복원하였다. 총 무게 2,700여톤의 총 2,000여개의 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돌 중 백제시대 석탑 기단석과 탑신석 35개개가 포함되어 있다.
내부는 1층에는 +자형 통로가 있고 2층부터는 막혀있다.
금당앞에 석등자리에는 석등하대석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식 석등이라고 한다.
백제 말기의 연화문 수막새와 그 양식이 같고, 창건시기부터 지금까지 현재위치에 있다고 한다.
동원과 중원 금당 앞에는 있고 서원에는 발굴이 되지 않았으나 있었을 것으로 추정만 한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목탑지가 있다.
현재는 주춧돌만 있으나 유물 박물관에 가면 복원한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조금더 저쪽으로 가면 서원에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지를 볼 수 있다. 교과서에서 많이 보던 석탑인데 현재는 2001년부터 보수 정비중이라 한다.
6층까지만 남아있었는데 일제시대때 시멘트로 복원을 하였고 최근에는 붕괴의 위험이 있어서 보수한다고 한다.
내부에 들어가 보면 그 터와 해체해 놓은 돌들을 볼 수 있다.
그 공사(?)장 옆에는 해체해 놓은 돌들을 더 확인할 수 있다.
동쪽 탑 옆으로가면 고려시대때의 가마터를 볼 수있다.
가마터는 그냥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봉분 1기만 볼 수 있다.
입구쪽에 있는 유물관에 가면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과 복원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기 유물 중에서 금동향로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익산시에서는 여기저기서 심볼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전시관 안에 미륵사가 왜 3개의 탑과 금당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유래가 나와 있다.
백제 무왕(서동)이 사자사에 행차하다가 익산 용화산(현재 미륵산) 아래 연못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때 갑자기 연못 가운데서 미륵삼존존이 나타나므로 무왕은 미륵삼존에게 예배하였다.
왕비(선화공주)가 미륵삼존이 나타난 연못에 절을 세울 것을 청하니 무왕은 그 일을 사자사 지명법사와 상의하였다.
지명법사는 신력으로 하룻밤 만에 산을 무너뜨려 연못을 메우고 절 지을 터를 마련하였다.
그 곳에 미륵삼존상을 모신 법당과 탑과 회랑을 각각 3곳에 나란히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하였다.
미륵사지 방문을 마치고 나서는 길.
많은 걸 보고 느낀점도 많았다.
그런데... 대중교통으로 탐방중이어서 교통편이 많이 불편하긴 하다.
버스정류장이 앞에 하나 있긴한데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 정작 기다리는 노선보다는 몇십분만에 온 다른 버스를 보고서는 반가운김에 타고 갔다.
다음은 왕궁리로 출발
201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