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6. 16:15ㆍ경상북도/영주시
소수서원을 보고 이동한 곳은 부석사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 하나라는 부석사. 이름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인 676년에 지어졌으니 약 1300년이 넘는 고찰이지요.
가을문턱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라서인지 군데군데 단풍이 든 곳도 있었고 특히 올라가면서 사 먹은 영주 사과의 맛은 점심을 먹은지 오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108개 계단의 시작인 천왕문. 무심결에 100개정도 되겠거니 했더니만 역시 108번뇌라고 계단이 108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계단이 앞부분에는 꽤 가파른데 저절로 몸이 숙여지고, 절을 향해 절을 하면서 들어오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부석사는 호국불교의 의미로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합니다.
젊은 승려였던 의상과 원효가 불교를 공부하러 중국으로 떠나던 중 그 유명한 에피소드인 해골물을 마시고 원효는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고 의상은 계속 중국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공부 중 선묘낭자를 알게되어 사랑을 하였고, 출가인이기에 결혼대신 제자로 삼았습니다.
당시 상황은 나당연합군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고 막 통일을 한 시점이고 당나라가 통일된 한반도를 먹으려고 준비를 하던 차 이었습니다.
이를 알게된 의상은 조국인 신라에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하여 신라로 엑소더스를 하였고 선묘낭자는 죽어서라도 그를 돕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 해룡이 되었습니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 문무왕의 명을 받고 국가를 보호해 줄 절을 지을 터를 찾아 다니게 됩니다.
열심히 터를 찾던 중 기가막힌 명터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건달들의 (뭐 산적일 수도) 소굴이었고 의상대사가 그들에게 이 곳을 내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순순히 주진 않았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일 찰나, 해룡이된 선묘낭자가 의상을 돕기위해 나타나게 됩니다.
거대한 돌을 하늘로 띄워 그 건달들 머리위에서 위협을 가하게 됩니다. 이를보고 놀란 건달들은 도망을 가게 되고, 신묘한 능력에 감탄한 일부 건달들은 사찰을 건설하는데 직접 참여하게 되기도 합니다.
위에 보이는 큰 바위가 당시 건달들 머리위에 둥둥 떠 다녔다는 바위입니다.
근데 잘 보면 뜬 돌이란 뜻의 浮石에서 石자의 口 자 위에 丶이 찍힌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스게 소리로 그 돌이 다시 떠서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못으로 박아 놓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이 사찰의 이름이 부석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 현장과 스토리도 좋았지만 가을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찰에서 나오는 향취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부석사는 국보와 보물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불국사가 국보 6개로 제일 많고, 부석사가 5개 있어서 2번째 입니다.
국보 5개와 보물 8개로 13개가 넘는 귀중한 문화재가 넘치는 곳이지요.
그 중 누구나 부석사 하면 떠오르는 무량수전은 두말할 나위 없는 건물입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국보 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입니다.
신라시대 최고의 석등이라 불리우는 무량수전 앞 석등.
신기한거는 무량수전 앞 계단을 올라오다보면 석등 구멍 사이로 무량수전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물론 키에 따라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조금만 맞추면 다 보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부석사에서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국보 제 18호 무량수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 제 45호 소조여래좌상. 이것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찍지 못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보통은 불상이 정면을 보고 있는데, 이 좌상은 오른편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석탑도 무량수전 앞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구요.
그쪽 방향으로는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신 국보 제 19호 조사당이 있습니다. 불상이 조사당을 향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조사당 안에 국보 제 46호 조사당벽화가 있습니다. 현재는 따로 떼어내서 보관한다고 하네요.
재밌는건 조사당 바로 앞에 나무가 한그루 자라고 있는데 의상대사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의상대사가 죽기 전에 자신의 지팡이를 꽂으며 자신이 이 사찰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이 나무가 있는 한 내가 이 사찰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고 하면서 말이죠.
과연 의상대사가 죽고 그 지팡이에서 나무가 자랐다고 합니다.
이 나무에도 큰 수난이 있었는데, 언젠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 고을의 높으신분께서 자신도 의상대사의 법력을 가지고 싶다고 그 나무를 잘라 지팡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곱게가시진 못했겠지요.
그 이후 나무가 다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수난은 현대인데 이 잎사귀와 가지를 다려먹으면 몸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장한장 사람들이 따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궁여지책으로 철조망을 쳐 놓았지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복을 기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나무 뒷쪽 벽이 약간 무서진 자국이 있습니다. 동전으로 강속구를 던진게죠. 그래서 지금은 아예 망으로 완전히 막아버렸습니다.
의상대사께서 욕심많은 후손들 때문에 옥살이 중이십니다.
무량수전과 조사당에는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사랑이 아직도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몇십년 전 동국대에서 정비하느라 무량수전 안과 밖을 정비하던 중에 땅 속에서 해룡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상반신은 무량수전 밖에, 나머지는 무량수전 안에 있고, 꼬리는 여래좌상 몸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근데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 일제시대때 사단이 난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무량수전 앞에서 보면 전망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실루엣을 강조해서 찍은것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진을 보면 처마 밑이 멋스럽게 생겼습니다.
신기한건 위치에 따라서 멋진 무늬 틈 사이가 무량수전을 뒷 배경으로 한 부처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멋진 풍경이 많은 부석사.
석양이 지는 부석사 풍경이 사진작가들의 단골 손님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넉넉한 시간에 자유롭게 더 구경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