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곡동

2011. 10. 12. 15:46서울/강남구

세곡동 동유래(세곡동 주민센터)

세곡동 동명은 1914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옛날의 자연부락 명칭인 의 자와 의 자를 각각 따서 제정한 것이다 세곡동의 연혁을 살펴보면, 이 곳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세천리, 은곡동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일 이 곳을 광주군 대왕면 세곡리로 칭하게 되었다.

세곡동의 행정동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1962년 말끼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관할 아래 있던 이 지역은 1963년 1월 1일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성동구 출장파출소의 관할하에 들게 되었다. 이 때 세곡동의 행정은 세곡동사무서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1970년 5월 18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 163조로 세곡동사무소가 세곡동과 함께 인근 율현동, 자곡동의 행정 도 맡게 되었다. 그리고 1973년 7월 1일에는 송파출장소가 폐지되고, 영동출장소가 신설되엇는데 세곡동사 무소가 이에 속하게 되었고, 1975년 10월 1일에는 성동구로부터 분리, 신설된 강남구에 속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세곡동사무소는 변함없이 율현,자곡,세곡의 행정을 맡고 있다.

세곡동의 현위치는 강남구의 남동쪽에 치우쳐 있으며, 성남시계와 접경되어 있다. 우선 동쪽의 강동구 장 지동, 서쪽은 서초구 내곡동, 남쪽은 경기도 성남시 신촌동, 북쪽은 율현동,자곡동에 인접해 있다. 강남구 지역이 새로운 도시가 되었어도 아직은 개발제한구역인 녹지대로 설정된 곳이 많이 있으므로, 사람 이 사는 터보다 채소나 곡시이 자라는 터가 더 넓고, 건물과 집이 들어선 곳보다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지 닌 곳이 더 많다.

현재 대왕초등학교가 있는 세곡동로터리 부근에 가느다란 개울 세곡천이 있고, 이 개울가에 세천리 마을이 있다. 현재도 헌릉로에서 은곡동으로 가려면 세천교를 건너야 하는데 이 다리는 1957년 1월에 건설되었으 며, 이 세천리에는 술막이라는 술을 파는 곳이 있다.

세천리와 함께 세곡동의 명칭이 있게 한 은곡동은 헌릉로 북쪽 대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은곡동은 일 명 망골(), 막은골이라 한다. 막은골이란 이름은 나무를 심어서 마을 수구를 막는데서 유래된 것이라 고 한다. 망골에는 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세곡동 40번지에 종중산이 있어 매년 시제를지내고 있다. 은곡동에서 자곡동의 못골로 넘어가는 곳(세곡동 산 3번지)에 도당터가 있으므로, 이 산을 도당뫼라고 부 른다. 동제를 지내던 그 터는 이제 채소밭이 되어 있다. 또한 이 부근 세곡동 362번지에는 수백년 된 느티나 무가 있으며, 은곡동 서쪽의 들판을 용푼이라고 한다. 이 용푼에는 굴이 있는데, 기이하게도 이 굴에서 불 을 때면 700여미터 떨어진 도당터 고목나무 줄기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는 것이다.

또한 이 마을의 뒷산인 대모산에는 북소리가 나는 바위가 있다. 못골 쪽 봉우리에 있는 이 바위를 두드리면 북소리가 난다고 한다. 비선거리에는 세곡동 118번지, 즉 세곡동사무소(세곡동 100-4)가 위치한 부근의 마을 로서 지난날 비석이 서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4. 세곡동 마고개 전설

에서 못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마고개라 한다.

150년전 이 마을 세곡동 450번지에 홍수근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3남은 힘이 장사로 집앞의 연 못을 뛰어 넘고 했다. 당시는 장사가 나면 를 당하기 일쑤이므로 이를 걱정하던 홍수근은 3남을 불 러 꾸중을 한 뒤 매를 심하게 때렸다. 그러자 그 장사는 그 날 밤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기이하게도 그 즉시 이 고개에서 말이 밤새도록 슬프게 울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장사가 말로 환생한 것이라 생각하고 이 고개를 마고개라 하게 되었다.

또 세곡동 362번지에는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은곡동 서쪽의 들판을 용푼이라고 한다. 이 용푼에는 굴이 있는데, 기이하게도 이 굴에서 불을 때면 700여미터 떨어진 도당터 고목나무 줄기에서 연기가 피어 오 른다는 것이다.


◈ 전설

마고개 (마현)
▷ 시대 : 19세기 중반
▷ 지역 : 세곡동의 한 마을인 은곡동에서 못골에 넘어가는 고개

약 150여년 전 이 마을 세곡동 450번지에 살던 홍수근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3째아들은 힘이 장사로서 집 앞의 연못을 뛰어넘곤 하였다 .당시는 장사가 나면 멸문지화를 당하기 일쑤이므로 이를 걱정한 홍수근은 3남을 불러 꾸중한 뒤 매를 심하게 때렸다. 그러자 이 장사는 그날 밤에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기이하게도 그 즉시 이 고개에서 말이 밤새도록 슬프게 울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장사가 말로 환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 고개를 마고개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출처 : 마케터 배씨 블로그 (http://blog.naver.com/sako71?Redirect=Log&logNo=130095844126)


◈ 유래 

반고개
▷ 지역 : 세곡동 로터리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세곡리로, 일명 잔내개울(細川)이라고 불렀다. 현재 세곡동 로터리가 있는 지역을 반고개라 했는데, 이곳이 부산까지의 거리와 함경도 의주까지의 거리가 각각 천리가 되는 정확한 중간 지점이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곳은 또 과거길이기도 했다. 특히 수원에서 판교(板橋)를 거쳐 현재의 수서, 그리고 송파장과 송파나루로 연결되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송파가 아니더라도 뚝섬이나 청담나루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논농사 위주의 여유로운 농촌지역이었다. 특히 현재 서울비행장(성남비행장)의 넓은 지역은 비옥한 논으로 광주군 16개 면 중에서 2번째로 부유한 면이었다.
밭작물로는 무, 배추 등이 재배되어 우마차를 이용해서 광나루다리를 건너 동대문 등지로 반출되었다.
세곡리는 일제시대에 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대왕면(인구 1만여명) 14개 이, 22개 부락의 중심지였다. 반고개로 불리는 세천에 50여호, 신촌동에 80여호, 은곡동에 70여호가 있었다. 일원동, 수서동, 도공(金土洞)까지 대왕면 관할이었다.

 ※ 출처 : 강남구청 홈페이지 (http://tour.gangna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