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2011. 10. 12. 13:22서울/강동구

◈ 역사

▷ 시대 : 신석기
▷ 지역 : 강동구 암사동 155번지
▷ 지정 : 사적 제267호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두만강 하류, 대동강 하류, 낙동강 하류와 더불어 우리 나라 신석기문화의 4대 중심지의 하나이며, 인근에는 같은 시기 유적인 하남시 미사리 유적도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크게 파괴되어 다수의 토기편이 노출되면서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67년 전국대학연합조사단(고려대·경희대·숭실대·전남대)이 처음으로 발굴한 이후, 1971∼1975년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집중적인 발굴과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20기에 가까운 수혈주거지(竪穴住居地)가 드러났다. 암사동 유적은 5개 지층(地層)으로 이루어져 제일 바닥층에 수혈주거지가 있는 선사시대 문화층, 그 위에 불모층, 제3층에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가 섞여 나오는 청동기문화층, 그 위에 백제문화층, 그리고 표토층으로 형성되었다.
그후 1979년 사적으로 지정 보호하기 시작하여 1980년 말에 신석기시대 취락지를 복원, 공원화계획을 추진하였다. 1984년에 서울대박물관의 발굴 결과 25개 주거지가 확인되고, 이미 발굴된 주거지 중 12기를 노출하여 선사취락지 복원작업을 실시하였다.
선사주거지는 사질토를 파고 들어간 수혈식 주거지로 그 규모는 대체로 한 변이 5∼6m이고, 깊이는 0.7m 내외이다. 그 평면구조는 원형인 3호 주거지 이외에 대부분 말각방형(네 귀퉁이를 없앤 사각형)을 취하고 있다. 중앙에 작은 강돌로 둘려진 화덕자리(爐址)가 있으며 출입구는 대체로 남쪽을 향하고 있다. 특히 6호 주거지는 출입구에 계단 형태를 보인다. 한 주거지에 4개 이상의 기둥구멍이 있으며 중앙에 중심기둥이 있었던 흔적이 있는 것도 있다. 한편 주거지 외곽에 자리잡은 저장공(貯藏孔)이 4개 확인되었으며, 이곳은 원형의 수혈로서 2단의 출입계단이 있다.
출토된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첨저형(尖底形) 빗살무늬토기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중간층(제3지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에서 민무늬토기시대에 걸치는 과도기적 양상을 띠고 있으며, 백제문화층에서는 삿무늬(짚으로 짠 자리 문양)가 있는 호형(壺形)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큰 옹관과 건물의 적심석이 발굴되었다.
또한 암사동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는 돌도끼·돌화살촉·어망추·갈돌(연석) 등이 있으며, 청동기 유물로는 방추차·청동촉·마제석부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고, 초기 백제의 유물로는 철제 자귀(도끼)와 철정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탄화(炭火) 도토리가 출토되어 채집경제를 살필 수 있으며, 새뼈·어골문 등으로 수렵과 어로생활이 경제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3000∼4000년 무렵의 문화유적이며, 그후 청동기 철기시대로 발전해 간 동일 지역의 문화상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암사동유적전시관과 더불어 집터가 복원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신석기시대 움집을 가상 복원하고 당시의 실물 움집터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전시관 바닥에는 당시의 실물 움집터 8채와 1개의 저장구덩이가 있으며, 전시관 내 창가에는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 신석기 시대의 생활과 문화상을 헤아릴 수 있게 하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 출처 : 자전거와 한강 홈페이지 (http://www.bikeriver.co.kr/story/h_cluture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