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곡동
2011. 10. 12. 17:01ㆍ서울/서초구
◈ 유래
염통골
▷ 지역 : 염곡동
마을의 생김새가 염통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염통골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곳 염곡동은 자그만치 13대를 살아온 창령 조씨의 집성촌이다. 마을 뒤로 구룡산이 있고, 그 산의 뒤쪽으로 대모산이 이어진다. 동네 앞의 큰 길은 30여년 전에 닦은 것이며 그 이전에는 군용도로가 있었다. 원래 이 길은 옛날에는 말죽거리에서 수원쪽으로 통하는 중요한 도로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100여 가구 중에서 한두 집만 빼고 모두 창령 조씨(曺氏)였으나, 지금은 160여 세대 중 약 3분의 1 정도가 이곳 토박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옛날 거주하던 창령 조씨 가구 중 약 절반인 50여 가구가 이곳을 떠나고 현재 반 정도 만이 계속 살고 있다. 인근에는 역말이 있었던 말죽거리가 가까이 있으며, 그곳에서 한남동나루까지는 약 20리 길이며, 배를 타고 건너서 삼각지나 청파동까지는 약 30리 길이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좁쌀과 같은 여러 곡식류와 산에서 나는 나물 등을 삼각지나 청파동에 가서 팔기도 하였다.
마을 안에 있는 언남초등학교는 4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부자동창이 많이 있다.
30여년 전에 서울로 편입되고 그 후에 강남이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이곳은 크게 바뀌었다. 특히 이곳이 8학군에 속하게 되면서 인근의 땅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다. 조씨들은 13대를 거쳐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일가친척이 된다. 삼촌과 조카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 50~60대가 되었기 때문에, 마치 형제나 다름없이 가까이 지낸다. 요즘도 거의 매일 중개인사무소에 모여 마을 일을 의론하고 오락을 즐기면서 서로간의 우애를 다지고 있다.
※ 출처 : 강남구청 홈페이지 (http://tour.gangnam.go.kr/)
염통골
▷ 지역 : 염곡동
마을의 생김새가 염통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염통골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곳 염곡동은 자그만치 13대를 살아온 창령 조씨의 집성촌이다. 마을 뒤로 구룡산이 있고, 그 산의 뒤쪽으로 대모산이 이어진다. 동네 앞의 큰 길은 30여년 전에 닦은 것이며 그 이전에는 군용도로가 있었다. 원래 이 길은 옛날에는 말죽거리에서 수원쪽으로 통하는 중요한 도로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100여 가구 중에서 한두 집만 빼고 모두 창령 조씨(曺氏)였으나, 지금은 160여 세대 중 약 3분의 1 정도가 이곳 토박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옛날 거주하던 창령 조씨 가구 중 약 절반인 50여 가구가 이곳을 떠나고 현재 반 정도 만이 계속 살고 있다. 인근에는 역말이 있었던 말죽거리가 가까이 있으며, 그곳에서 한남동나루까지는 약 20리 길이며, 배를 타고 건너서 삼각지나 청파동까지는 약 30리 길이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좁쌀과 같은 여러 곡식류와 산에서 나는 나물 등을 삼각지나 청파동에 가서 팔기도 하였다.
마을 안에 있는 언남초등학교는 4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부자동창이 많이 있다.
30여년 전에 서울로 편입되고 그 후에 강남이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이곳은 크게 바뀌었다. 특히 이곳이 8학군에 속하게 되면서 인근의 땅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다. 조씨들은 13대를 거쳐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일가친척이 된다. 삼촌과 조카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 50~60대가 되었기 때문에, 마치 형제나 다름없이 가까이 지낸다. 요즘도 거의 매일 중개인사무소에 모여 마을 일을 의론하고 오락을 즐기면서 서로간의 우애를 다지고 있다.
※ 출처 : 강남구청 홈페이지 (http://tour.gangna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