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4. 17:15ㆍ전라북도/익산시
미륵사지에서 금마 방면으로 가다보면 금마 터미널을 지나 왕궁리 유적을 볼 수 있다.
금마 터미널에서부터 왕궁리유적까지 가는 차편이 애매하여 슬슬 걸어갔는데 한여름에 걷기 좋은 길은 아니었다.
가는 중간에 이정표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유적지를 발견하였다.
이정표에 쓰여 있는 것으론 "석불 입상".
가는 길이 국도 옆길이어서 걷기가 어려웠는데 중간에 교차점이 있어 석불입상이란 곳은 포기했다.
그런데 왕궁리 유적쪽으로 가다보니 국도 아래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석불입상 유적을 보러 나섰다.
논 사이를 지나 봉분이 보이고 위 사진과 같은 입상이 보였다.
유물 설명을 보니 보물 제 46호였다. 이런 위치에 있는줄도 몰랐었는데...
설명을 보니 한군데 더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에 같은 모양이 하나 더 서 있었다.
예상외의 득템을 하고 다시 왕궁리를 향하여 출발.
왕궁리 유적은 차량이 없으면 접근하기가 너무 어렵게 되어 있다.
대중교통과 도보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약 20~30분 이상 걷던지 아니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던지 해야 하는데 한여름 땡볕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드디어 왕궁리 유적에 도착.
사적 제 408호 왕궁리 유적지는 예로부터 왕궁평, 왕검이, 왕금성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 왕궁터에 나중에 백제 사찰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유적지에는 왕궁 유적과 사찰 유적이 공존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때 왕궁으로 조성되고 백제 말이나 통일신라 초기에 사찰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석축 단을 만들어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지었는데 그 안에 물과 조경석을 이용한 조경시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왕궁터 유적에는 마한의 기준 도읍설, 백제무왕의 천도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정리가 된 것은 백제 무왕이 세운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유적 배치도를 보면 왕궁터와 석탑 및 금당지 등이 섞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유적지에서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왕궁리 5층석탑이다.
넓은 건물터에 건물없이 석탑 하나만 덩그라니 보이니 더더욱 눈에 잘 보인다.
높이가 약 9미터 정도 되는 이 석탑의 축조시기에 대해 아직 의견이 많다고 한다. 백제, 통일신라 심지어 고려초까지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탐방 전 어느 자료에서 보니 저녁 노을질 때 보면 그렇게 멋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행선지가 있기때문에 저녁까진 볼 수 없어서 왕궁리 유적 박물관으로 향한다.(안내문에는 유적 박물관을 먼저 보고 유적지를 보라고 나와 있긴 하다 ㅎ)
왕궁리유적 조감 모형도이다.
넓은 벌판에 탑이 눈에 확 들어온다.
출토된 유물들을 보면 다른 백제 유물관과 마찬가지로 백제식 수막새 등을 볼 수가 있다.
하나 재밌는 것은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모형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 쇼킹했던 것은 화장실이다.
맨 마지막에 있는 사진이 화장실 사진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앞쪽에 병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오늘날 휴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ㅡㅡ;;(1회용인지 확인은 못했다ㅋ)
그 외 기타 건축물이나 탑에 대한 설명 등을 나름 잘 설명해 놓아서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백제 왕궁에 대한 설명들이 나와 있었는데 내가 아는바로는 부여 왕궁터는 아직 확실하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도보여행으로 왕궁리 유적을 관람하는 경우에는 안내데스크에서 버스 시간을 꼭 확인하고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배차간격이 상당히 길다.)
이것으로 짧은 익산 문화탐방을 마치고 백제 웅진 도읍지 공주로 출발한다.
201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