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2011. 10. 12. 15:51ㆍ서울/강남구
대치동 은행나무
▷ 시대 : 미상(약 500년 전)
▷ 지역 : 대치동 975-8번지
대치동 975-8번지에 소령 약 5백년이나 되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앞에 영산단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나무는 옛날 이 마을에 살던 한 할머니가 용문산으로 정성을 드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은행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이 자리에 꽂은 것이 현재에 이른다고 전해온다. 옛날 이 구마을 사람들은 지팡이가 움이 트고 자라나자 신기하게 여겨 매년 7월에 치제(致祭)하였는데 그 뒤부터 모두 건강하고 불구자가 태어나지 않아 동신으로 수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 출처 : 마케팅 배씨 블로그 (http://blog.naver.com/sako71?Redirect=Log&logNo=130095844126)
◈ 유래
한티
▷ 지역 : 대치동
대치동은 본래 ‘한터’, ‘한티’로 불리던 것이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대치(大峙)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티’ 혹은 ‘한터’란 말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불분명하다. 지금의 휘문고등학교 앞에 고개가 있었던 점으로 보아서 ‘한티’라 불렸을 것으로 보는 견해와 마을 앞이 모두 밭으로 펼쳐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리밭 한과 펼 터자를 써서‘한터’라 불렀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 출처 : 강남구청 홈페이지 (http://tour.gangnam.go.kr/)
(대치동 주민센터 홈페이지)
대치동은 조선새대 이곳에 있던 자연부락7, 8개 마을중 큰 고개 밑에 있는 가장 큰 한티(또는 한터)마을을 한자명으로 大峙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대치동의 자연부락 한티를 비롯하여 움말, 음달짝, 새말, 능인말, 중간말, 세촌, 아랫말 등 8개 마을로 형성되었으며 이들 마을은 예부터 쪽박산(현 대치동947 부근)으로 둘러 쌓여 답답하였고, 또 잠실주변과 연계되어 비가 조금만 내려도 탄천과 양채천이 범람하여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옛부터 이곳 주민들은 이 마을을 둘러싼 쪽박산이 없어져야 이 마을이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 쪽박산이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선 이곳 대치동은 전설이 현실화되어 강남에서도 중상층 이상이 살며 서울에서 가장 살고싶어 하는 선호 마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