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6. 15:45ㆍ강원도/고성군
바로 이곳에 자손 대대로 정선 씨 가문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입구에 조선조 선조때(1567 ~ 1608)사람으로 부모에게 효심이 지극하던 전씨 문중의 46대 조상인 봉상 51대 조상인 공순 54대 조상인 재후 세 분의 효자비가 모셔진 8각 지붕의 효자각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지금으로 부터 약 400여년전 조선조 선조시대 간성 교동리에는 할아버지는 심도부위요 아버지는 참봉벼슬을 한 순신(당시 참봉 1540 ~1586, 중종~선조)이라는 분이 아들 형제를 슬하에 두고 있었다.
형은 봉걸이요동생은 봉상이라 이름하였다.
그 형제 중에서도 동생인 봉상은 아주 영명하여 등화가친하여 독서삼매경에 묻힐 정도로 공부만 하는 소년으로 항상 웃어른들에게는 공손하며 부모에게는 효행이 극진한 아이로 어릴때부터 어진 천성을 지닌 소년으로 소문 나 있었다.
봉상이 일곱 살 되던 어린 소년에게는 몹시도 춥게 느껴지는 겨울철이였었다.
아버님 순신이 여러 날 동안 다리가 몹시 쑤시고 아파 누워만 계셨기에 그 때만 하여도 별로 신통한 치료 약이나 의원이 있는 시절도 아니라 다만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비는 수 밖 에 없는 어느 날 어른들 말씀에 잉어를 고아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워낙 가세가 빈곤하여 쇠고기 한번 잡수어 본 일이 없는 아버님께서 잉어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는 일곱살 밖에 되지 않는 소년 봉상은 온통 산과 들이 눈으로 뒤덮힌 하얀 길을 헤치며 잉어를 구해 보려고 찾아 나선 것이다.
여인상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아 오늘날에 사는 우리로써는 새삼 가슴 뜨거워짐을 느낄 따름이다.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눈 아래 사방을 굽어 보았으나 어디가서 잉어를 잡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고 눈앞이 캄캄하였으나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잉어에 대한 생각만 머리속에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한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동호리 호수가 얼른 떠올랐다. 새벽 찬바람에 동호리까지 깊은 눈길을 혼자 간다는 것은 정말 어린 소년에게는 힘겨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효성이 극진한 봉산에게는 곰곰히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버님의 병환을 염려하여 정월 추위에 얼어죽지 않은 것만 감지덕지 천행으로 여기고 무작정 걸어만 갔다.
그리하여 동호리 호수가에 거의 가까이 왔을 무렵 홀연히 겨울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뇌성벽력으로 온통 천지를 뒤덮어 놓을 듯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난데없이 팔뚝만한 잉어 두마리가 봉산의 눈앞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효자는 하늘이 알아준다 하더니 착한 어린 아들의 지극한 효심에 감복함인지 봉상 소년의 반가움은 그 어디에 비할 수 있겠읍니까?
눈 덮힌 겨울철에 얻은 귀한 잉어를 아버님께 봉양할 수 있는 봉상의 기쁜 마음은 과연 어떠하였겠습니까?
그의 어질고 착한 성품이 훗날에도 그 아버님 순신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을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여 7일 동안이나 곤히 잠들다 다시 깨어나 병세를 회복하여 3년이나 더 사시게 하였다. 이는 그의 효심이 얼마나 깊고 깊었나 하는 것은 오늘에 사는 후손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가 없다.
그 후 후대 자손들이 이 거룩한 조상의 뜻을 받들어 1610년에 정축 1칸에 8각 지붕의 효자각을 짖고 봉산, 공순, 재후, 세분의 효자석비를 세웠는데 그 후대에도 많은 효자가 배출되었다 한다.
출처 : 강원도 고성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