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5. 14:23ㆍ서울/강남구
압구정동 유래 (압구정동 주민센터)
狎鷗亭洞 洞名의 由來는 이곳이 朝鮮 세조때 權臣 韓明澮가 지은 狎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압구는 한명회의
號로서 일찍이 중국 송나라의 宰相 韓琦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면서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이라고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세상일 다 버리고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아주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뒤 압구정은 楮子島와 함께 철종의 딸인 영혜옹주와
결혼하여 錦陵慰가 된 朴泳孝에게 하사되었으나,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려 한 때 몰수되었다가 고종 말년에 다시 찾았으며, 언제 철폐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조선시대 압구정동의 자연부락은 뒤주니, 먼오금, 옥골, 장자말 등이 있었다.
뒤주니는 압구정 밑에 있는 마을로 압구정을 뒤지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먼오금은 압구정 구내에 있었던 마을이었고 옥골은 한강물이 마을 앞을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옥골 뒷산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가 출토되기도 했었으며 장자말은 옛날 큰 부자가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장자울이라고도 불렀고 기와집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업위주의 마을이었으며, 일제하에서는 배 밭 등 과수원을 주 농업으로 해온 마을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의해 서울 근교의
농촌 마을이었던 이 마을 고유의 주택을 비롯해서 벌판의 야산과 전답이 모두 개발되면서 서울의 신흥 주택가 및 사업지역으로 탈바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狎鷗亭은 지금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화폭에 담긴 압구정 (출처 : 동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