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7. 13:26ㆍ경상남도/통영시
거북선, 학익진, 이순신의 시조 등 낯익은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 곳.
좁은 해협과 작은 섬들을 활용해 적은 수로도 다수의 왜군을 막을 수 있었던 천혜의 요새.
제승당으로 향하는 뱃길에 보니 과연 조그만 섬들이 많이 보였다.
배를 내려오면 시간에 맞춰 마을로 가는 버스가 와 있다. 그 버스를 타지 말고 오른쪽으로 길 따라 가면 제승당으로 가는길이 나온다.
수돗가도 분위기에 맞게 거북선 모양인게 이색적이다.
제승당 가는길에서 본 한산도 앞 바다. 저 앞에 보이는 좁은 입구에 들어오면 안쪽으로 꽤 넓은 공간이 나온다. 우각호 처럼 생긴 모양이다. 자연제방같다.
한산만은 통영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의 내륙의 바다이다. 한산만의 남쪽은 통영만으로 불리고 있다.
한산만은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은 모양양으로 남서쪽에는 두억포가 있고 남동쪽에는 고포가 있다.
한산만의 수심은 입구가 12~14미터, 안쪽이 6~9미터로 소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산만 남쪽의 통영만도 비슷한 지형이지만 입구폭이 1.2KM로 더 넓고 수심이 10미터가 넘어 대형 선박의 출입도 가능하다.
임진왜란때에는 두억포에 삼도수군의 본영이 설치되었는데 전함인 판옥선과 정탐선인 척후선 100여척과 740여명의 조선수군이 주둔했다. 충무공은 이러한 지형을 유리하게 이용하여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제승당을 향해 가는 길. 주변에 소나무가 멋스럽게 생겼다. 붉은 모양이 적송같이 보인다.
제승당 안내도. 5번 건물이 그 유명한 수루이다.
수루에 올라보면 한산도 앞바다와 지형이 훤히 다 보인다. 420년전 이순신장군께서 이 곳에서 작전을 짜셨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남다르다.
활쏘기를 연습했다던 한산정이다. 과녁이 생각보다 많이 멀리 있다. 과녁까지 거리가 145미터 정도이다.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한산정 이곳 한곳 뿐이다.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하여 해전에 필요한 실전거리 적응훈련을 위하여 이러한 배치를 하였다고 한다.
난중일기에는 이곳에서 활쏘기 내기를 하였고 진 편에서 떡과 막걸리를 내어 배불리 먹게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산대첩도. 실제 지형을 보면서 이 그림을 보니 더욱 생생히 전략전술이 느껴진다.
1592년 7월 8일과 10일에 통영 한산만과 용원 안골포에서 충무공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왜장 와키자카의 수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로 이순신장군은 그 유명한 학익진을 펴고 거북선과 총통으로 왜선 47척을 격침시키고, 안골포에서도 왜선 40여척을 불태웠다. 이 승리로 왜군의 보급로는 거의 차단되었고,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전라도와 충청도가 안전하게 되었다.
이 패배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더이상 경솔하게 조선 수군과 대치하지 않도록 명령하였다. 김시민장군의 진주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