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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동
◈ 역사 명일동 유적 ▷ 시대 : 청동기 후기 ▷ 지역 : 암사동 남쪽 해발 42m의 야산 사면에 위치 강동구 명일동 유적은 청동기 후기의 주거지로 1961년 암사동 남쪽 해발 42m의 야산 사면에 위치하였다. 한 모서리가 6m 정도의 방형에 가까운 평면의 유적이며, 출토된 유물로서는 돌칼·돌화살촉·평저민무늬토기·숫돌이 있다. 돌칼은 홈이 있는 형식으로 기원전 3세기경의 유물로 추정된다. ※ 출처 : 자전거와 한강 홈페이지 (http://www.bikeriver.co.kr/story/h_cluture01.htm)
2011.10.12 -
양재동
◈ 역사 말죽거리 ▷ 시대 : 조선 인조 ▷ 지역 : 양재역 인근 1. 양재동 말죽거리(마죽거리)는 현 양재역 부근에 있는 조선시대 자연마을의 명칭이다. 조선시대 인조 2년(1624)에 평안병사 이괄이 반정에 따른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서울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반군이 질풍처럼 개성을 지나 벽제관에 이르자 인조임금은 황망히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 때 인조 임금은 남한강 나루에서 배를 간신히 구해 한강을 건너 신사동의 새말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말죽거리에 이르자 목이 몹시 말랐다. 그 때 이곳에 사는 유생 김이 등 6, 7명이 급히 팥죽을 쑤어 바치자 인조는 말 위에서 이 죽을 다 마시고 과천을 거쳐 공주까지 내려갔다. 그 뒤부터 임금이 말 위에서 죽을 마셨다는 뜻에서..
2011.10.12 -
삼성동
삼성동 유래(삼성동 주민센터)삼성동은 조선시대 자연부락인 봉은사, 무동도, 닥점의 세마을을 병합하여 삼성리라 명명한데서 유래하였고, 일제때 1913. 3. 1 조선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한 경기도 구역확정때 삼성리라 하였으며,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가 1963. 1. 1 법률 제1172호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당시 자연 부락으로 닥점, 무동도, 학동도, 배곶이 마을등이 있었는데 무동도는 마을 동쪽 한강 가운데있던 섬으로 무동도라 한 것은 이선 남쪽에 어린아이처럼 생긴 바위가 마치 춤추는 모습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한강 여러섬 가운데 유서깊은 섬으로 모래와 무성한 갈대, 울창한 수목이 가득하여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유명하였으나 강남지구 개발에 의해 자취마저 사라지고 푸른 강물만 말없이 흐르..
2011.10.12 -
가락동
◈ 역사 ▷ 시대 : 청동기 (기원전 7세기 전후) ▷ 지역 : 송파구 가락동 송파대로 동쪽 해발 40m 가량의 낮은 구릉 위 송파구 가락동 송파대로 동쪽 해발 40m 가량의 낮은 구릉 위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1963년 고려대학교가 1기를, 1976년 잠실지구유적조사단이 5기를 발견하였다. 1963년 발굴된 유적은 장방형의 반움집터인데, 한강변에서 약 2∼2.5km 떨어져 있으며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산마루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당시 어로생활이나 수렵에는 불편한 위치이므로 주민들은 주로 밭농사나 벼농사에 의한 농업경제에 의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유적은 산마루 가까운 능선의 사면을 깎아서 만든 장방형의 반움집터로 길이는 동서 10m, 너비는 남북 7m이며, 깊이는 경사진 지면에 따라..
2011.10.12 -
도곡동
도곡동 유래 (도곡동 주민센터 홈페이지)道谷洞은 洞名의 유래는 이 마을 뒤에 매봉산이 둘러 있고 물 아래쪽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있으므로 독부리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독구리, 독골이 되어 道谷이라 명명하였다. 道谷洞의 연혁을 살펴보면 朝鮮末까지는 京畿道 廣州郡 彦州面 良才洞이었다. 日帝때인 1914년 3월1일 경기도 구역 획정이 있었는데 이 때 독골, 양재리를 합쳐 良才里라 하였다. 이후 변동 없이 내려오다가 1963년 1월 1일(法律 제 1172호) 서울特別市 城東區에 편입되면서 옛 이름 독골을 되찾아 道谷洞이 되었다. 도곡동의 자연촌락명인 독구리마을은 朝鮮時代 漢陽으로 入城하는 중간에 있는 마을로 전에 한양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入城하기 전에 하룻밤 묵고 잠깐 쉬어가는 마을이었다. 주막집 서너 집이 ..
2011.10.12 -
암사동
◈ 역사 ▷ 시대 : 신석기 ▷ 지역 : 강동구 암사동 155번지 ▷ 지정 : 사적 제267호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두만강 하류, 대동강 하류, 낙동강 하류와 더불어 우리 나라 신석기문화의 4대 중심지의 하나이며, 인근에는 같은 시기 유적인 하남시 미사리 유적도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크게 파괴되어 다수의 토기편이 노출되면서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67년 전국대학연합조사단(고려대·경희대·숭실대·전남대)이 처음으로 발굴한 이후, 1971∼1975년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집중적인 발굴과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20기에 가까운 수혈주거지(竪穴住居地)가 드러났다. 암사동 유적은 5개 지층(地層)으로 이루어져 제일 바닥층에 수혈주거지가 있는 선사시대 문화층, 그 위에 불모층,..
2011.10.12